AI 의료기기 국제 규제 조화: 미국·EU·한국의 SaMD 기준선이 임상 현장을 바꾸는 방식

왜 지금 국제 규제 조화인가

2026년 현재 FDA에 등록된 AI 의료기기는 1,524개를 넘어섰다. 같은 기간 EU는 AI Act 본격 시행에 들어갔고, 한국은 디지털헬스케어법 제정 공청회를 열었다. 문제는 같은 알고리즘이 시장에 따라 다른 규제 지위를 부여받는다는 점이다. 서울에서 SaMD(소프트웨어 의료기기)로 허가받은 AI 영상 판독 솔루션이 미국에서는 510(k) 심사 대상인지, De Novo 경로가 필요한지 결정이 엇갈리는 상황이 실제로 반복되고 있다. 이 규제 단절은 단순한 행정 문제가 아니다. 임상 검증 데이터의 상호인정 부재, 시판 후 감시 체계의 불일치, 그리고 알고리즘 업데이트 관리 기준의 격차가 환자 안전과 직접 연결된다.

규제 조화의 필요성은 학술 논문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Benjamens et al.이 JAMA Health Forum에 발표한 분석(2025)은 FDA 승인 AI 의료기기의 76%가 방사선 영역에 집중되어 있으며, 이 중 임상 결과를 1차 평가변수로 제시한 제품은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고 보고했다. 다시 말해, 규제 승인과 임상 효능 증명은 여전히 별개의 트랙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국제의료기기규제포럼(IMDRF)은 SaMD 정의 및 분류 공통 프레임워크를 제시했고, 각국 규제 기관은 이를 어떻게 국내법에 녹여낼지 씨름 중이다.

미국 FDA: 적응형 규제 경로와 PCCP

FDA는 2026년 Q2에만 86건의 AI 의료기기를 승인하며 누적 1,524건을 기록했다. 속도는 빨라졌지만, 승인 방식의 구조적 변화가 더 중요하다. FDA가 도입한 ‘사전 결정된 변경 관리 계획(PCCP, Predetermined Change Control Plan)’은 알고리즘이 지속적으로 학습·업데이트되는 AI 의료기기의 특성에 맞춘 규제 도구다. 제조사는 제품 승인 시점에 향후 알고리즘 변경 범위와 검증 방법을 미리 명시하고, 이 범위 내 변경은 별도 심사 없이 시행할 수 있다.

이 접근법의 임상적 함의는 명확하다. PCCP가 없던 시절, 알고리즘 재훈련이 필요할 때마다 제조사는 전체 심사를 새로 받아야 했다. 실제 임상 데이터가 쌓여도 모델을 개선하기 어려웠고, 결과적으로 현장에 배포된 AI는 출시 당시 데이터로만 작동하는 ‘정적 모델’에 가까웠다. PCCP는 이 경직성을 일부 해소하지만, 동시에 임상의가 자신이 사용하는 AI가 어느 버전의 알고리즘으로 동작하는지 파악하기 어려워지는 문제를 낳는다. 투명성 요건이 규제의 속도 확보만큼 중요한 이유다.

EU AI Act: 위험 기반 분류와 의료 AI

EU AI Act는 2024년 8월 발효됐고, 의료 분야 AI 시스템은 대부분 ‘고위험(High-Risk)’ 군으로 분류된다. 이는 CE 마킹과 별도로 AI Act 적합성 평가를 거쳐야 한다는 의미다. 의료기기 규정(MDR)과 AI Act를 동시에 충족해야 하는 이중 규제 부담은 유럽 시장 진입 비용을 높인다. IntuitionLabs의 2026년 분석에 따르면, 각국이 AI 관련 입법을 확대함에 따라 국제 규제 조화가 최우선 과제로 부상하고 있으며, 특히 고위험 의료 AI의 임상 검증 기준 통일이 핵심 쟁점이다.

EU 접근법의 특징은 ‘사람에 의한 감독(Human Oversight)’ 요건을 명문화한 점이다. 의료 AI가 임상 결정에 직접 영향을 주는 경우, 최종 판단 권한이 의사에게 있어야 하며 AI의 권고를 거부할 수 있는 구조여야 한다. 이는 미국 FDA의 Non-Device CDS(임상결정지원 소프트웨어) 예외 규정과 상충하는 지점이 있다. FDA는 임상의가 AI 권고의 근거를 독립적으로 검토할 수 있으면 규제 기기에서 제외할 수 있다고 보지만, EU는 그 검토 가능성의 실질적 구현 방식까지 요구한다.

한국: 디지털헬스케어법과 MFDS 규제 체계

한국은 2026년 6월 ‘디지털헬스케어 및 보건의료정보 활용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 공청회를 열었다. 핵심 쟁점은 두 가지다. 첫째, LLM(대형언어모델) 기반 AI 도구를 의료기기로 볼 것인지 여부다. 식약처는 2026년 7월 LLM 기반 디지털의료기기 허가·심사 가이드라인을 발표했고, 임상 결정에 직접 영향을 주는 LLM은 SaMD로 분류해 허가를 요구하는 방향을 제시했다. 둘째, 보건의료 데이터 활용과 개인정보 보호의 균형이다. 의료 AI 학습을 위한 데이터 활용 근거 법률이 없는 상태에서, 이미 ChatGPT에 건강 정보를 입력하는 일반인과 법 사이의 간극이 벌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공청회에서 나왔다.

iclg.com이 2026년 7월 발표한 ‘Digital Health Laws and Regulations Report 2026 Korea’는 한국 식약처(MFDS)가 SaMD에 대해 인허가, 임상시험 승인, 제조 품질관리, 시판 후 감시까지 전 생애주기 규제 권한을 행사한다고 정리했다. 구조적으로는 FDA 체계와 유사하지만, 시판 후 실사용 데이터(Real-World Evidence) 수집과 분석 의무화는 아직 초기 단계다. 이는 규제 승인 이후 실제 임상 환경에서 AI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체계적으로 검증하는 기반이 아직 취약하다는 의미다.

규제 조화가 실패하면 임상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

규제 기준이 국가마다 다를 때 발생하는 실질적 문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임상 검증 데이터 분절: 한국 데이터로 학습·검증된 AI가 미국 환자군에서 동일한 성능을 낸다는 보장이 없다. 하지만 상호인정 체계 없이는 각 시장에서 별도 임상시험을 진행해야 한다.
  • 알고리즘 업데이트 불투명성: PCCP가 없는 시장에서는 제조사가 알고리즘을 조용히 변경해도 임상의는 알기 어렵다. 현장 의사가 ‘어제의 AI’와 ‘오늘의 AI’를 동일하게 신뢰하는 오류가 발생한다.
  • 책임 소재 불명확: AI 권고를 따른 진료 결정이 잘못됐을 때, 의사·병원·AI 제조사 중 누가 법적 책임을 지는지 각국 규제는 다르게 답한다.

이 문제들은 각각 독립적이지 않다. 데이터 분절이 검증을 어렵게 하고, 불투명한 업데이트가 책임 구조를 흐리며, 책임 불명확이 제조사의 임상 데이터 공개 유인을 낮춘다. 국제 규제 조화는 이 악순환을 끊는 출발점이다.

응급의학과 전문의의 한 마디

응급실에서 AI 도구를 마주할 때 가장 불편한 점은 ‘이 AI가 내 눈앞의 환자와 유사한 케이스로 훈련됐는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국제 규제 조화 논의는 멀리 있는 정책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지만, 실은 임상의가 AI를 얼마나 믿고 쓸 수 있느냐는 신뢰 기반의 문제다.

현재 미국·EU·한국이 각각 다른 속도와 기준으로 AI 의료기기를 규제하는 상황은, 결국 제조사가 규제 허들이 낮은 시장에서 먼저 출시한 뒤 더 엄격한 시장에 진입하는 전략을 취하게 만든다. 가장 느슨한 규제가 글로벌 기준선이 되는 구조다. IMDRF 프레임워크가 법적 구속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실질적 조화는 주요국 규제 기관 간 데이터 요건·시판 후 감시 기준의 실무 합의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다.

임상의로서 바라는 것은 단순하다. 내가 사용하는 AI가 어떤 데이터로 검증됐는지, 마지막으로 업데이트된 시점이 언제인지, 그리고 내 환자군에 적용 가능한지를 제품 설명서 수준으로 확인할 수 있는 환경이다. 국제 규제 조화는 그 투명성을 가능하게 하는 전제 조건이다.


References

  • Benjamens S, et al. “The state of artificial intelligence-based FDA-approved medical devices and algorithms: an online database.” JAMA Health Forum, 2025.
  • IntuitionLabs. “FDA AI/ML SaMD Guidance: Complete 2026 Compliance Guide.” intuitionlabs.ai, 2026.
  • IntuitionLabs. “FDA-Approved AI Medical Devices List: Complete 2026 Guide.” intuitionlabs.ai, 2026.
  • ICLG. “Digital Health Laws and Regulations Report 2026 Korea.” iclg.com, July 2026.
  • blueBriX. “The 2026 AI reset: a new era for healthcare policy.” bluebrix.health, 2026.
  • FDA Digital Health Center of Excellence. “Consistent application of digital health technology policy and oversight approaches.” fda.gov, 2026.
  • European Parliament. Regulation (EU) 2024/1689 of the European Parliament and of the Council (EU AI Act). Official Journal of the European Union, 2024.
  • IMDRF SaMD Working Group. “Software as a Medical Device (SaMD): Key Definitions.” IMDRF/SaMD WG/N10 FINAL: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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