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변화 요약: 상대가치 전면 재편과 공공정책수가 도입
2026년 2월 25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는 130조 원 규모의 건강보험 수가 체계를 전면 개편하는 안을 의결했다. 핵심은 세 가지다. 첫째, 의료비용 원가분석을 반영한 상대가치 수가 조정, 둘째, 고위험·저보상 구조에 놓인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공공정책수가’ 신설, 셋째, 성과 중심 보상체계로의 전환이다. 복지부·기획예산처·교육부가 공동으로 참여한 이번 개편은 단순한 수가 인상이 아니라, 대한민국 의료 지불 구조의 근본적 재설계를 선언한 것으로 읽힌다.
이번 개편의 직접적 배경은 2024년부터 지속된 의료 위기다. 전공의 이탈과 필수의료 기피 현상이 가속화되는 구조 속에서, 기존 행위별 수가제(FFS, Fee-For-Service)가 응급·중증·분만 등 고위험 의료 행위를 구조적으로 저평가해왔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정부는 이번 개편을 통해 그 구조적 왜곡을 바로잡겠다는 의지를 공식화한 셈이다.
배경: 왜 지금 이 개편인가
대한민국 건강보험 수가 체계는 1989년 전국민 의료보험 도입 이후 30여 년 간 행위별 수가제를 근간으로 운용되어 왔다. 이 구조는 진료량이 많을수록 수익이 늘어나는 유인 구조를 만들어 냈고, 결과적으로 경증 외래는 과잉 공급, 중증·응급·분만은 만성적 저수가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국제적 근거도 이 판단을 뒷받침한다. OECD Health at a Glance 2023 보고서는 한국의 의사 1인당 연간 외래 진료 건수가 OECD 평균의 3배를 초과하는 반면, 응급의학·흉부외과·산부인과 등 필수의료 분야의 전공의 지원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수가가 낮고 법적 위험이 높은 분야는 의사들이 자연스럽게 회피하게 된다는 것은 경제학적으로도, 임상적으로도 예측 가능한 결과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올해 초 “지역의사제 도입, 필수의료 개편, 상대가치 수가 정상화가 2026년 의료정책의 핵심 축”이라고 명시했다. 이번 건정심 의결은 그 선언의 첫 번째 구체적 실행이다.
의료현장 영향: 응급의학과 관점에서 본 실질적 변화
이번 개편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공공정책수가(Public Policy Fee)’의 신설이다. 이는 기존 행위별 수가로는 원가 보전이 불가능한 고위험 의료 행위에 대해, 공익적 목적에서 별도의 추가 보상을 지급하는 구조다. 응급의학, 중증외상, 분만, 소아청소년과 중증 처치, 심뇌혈관 응급처치 등이 주요 적용 대상으로 거론된다.
응급실 현장에서 이 변화는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가. 현재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수행하는 기관삽관, 응급 심낭천자, 소생개흉술 등의 고위험 술기는 시술 난이도와 법적 책임에 비해 수가가 현저히 낮다. 이로 인해 일부 병원은 응급의학과 전문의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응급실 의료의 질 저하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어 왔다. 공공정책수가가 실제로 이들 항목에 적용된다면, 단순한 수익 개선을 넘어 인력 유지와 진료 질 담보라는 시스템적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
다만 긍정적 기대만으로 평가를 끝낼 수는 없다. 실제 적용 항목과 수가 수준이 최종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현장에서는 몇 가지 우려도 공존한다.
- 공공정책수가 지급 요건(기관 인증, 당직 체계, 전문의 상주 여부 등)이 엄격하게 설정될 경우, 규모가 작은 지역 병원은 혜택에서 소외될 가능성
- 성과 중심 보상체계 전환 과정에서 ‘성과’ 지표 설정 주체와 방식에 따라 의료 행위 왜곡이 재발할 위험
- 고평가 항목 수가 인하에 따른 일부 의료기관 수익 감소 및 갈등 가능성
이와 함께, 건정심은 담도암·간세포암에 대한 임핀지(durvalumab) 급여 확대도 함께 의결했다. 연간 약 1억 원에 달하던 환자 부담이 600만 원 수준으로 대폭 낮아지는 것으로, 필수의약품 접근성 개선이라는 측면에서 병행된 정책 신호로 읽힌다.
향후 전망: 구조 개편의 성패를 가를 변수들
이번 수가 개편이 실질적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첫째는 원가분석의 투명성이다. 수가 조정의 근거가 되는 의료 원가 분석 결과가 공개되고 검증될 수 있어야 의료계와 환자 모두가 수용할 수 있다. 둘째는 의료전달체계 개편과의 연동이다. 수가만 바꾸고 1차-2차-3차 의료기관 간 역할 분담이 바뀌지 않으면, 구조적 왜곡은 형태만 달리해 반복될 것이다. 셋째는 지속가능한 재정 설계다. 보험료율이 7.19%로 인상된 2026년, 추가적인 지출 증가가 건강보험 재정 안정성을 위협하지 않도록 중장기 시뮬레이션이 선행되어야 한다.
국제적으로도 수가 구조 개편의 선례는 적지 않다. 미국의 Medicare Advantage, 영국 NHS의 블록계약 방식, 독일의 질환군별 정액수가(DRG) 등은 각기 다른 지불 구조를 채택하면서 장단점을 노출해 왔다. 어떤 모델도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 국제적 교훈이며, 한국형 혼합 모델의 설계에는 그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응급의학과 전문의의 한 마디
응급실에서 20년 가까이 일하면서 가장 자주 목격한 장면 중 하나는, 환자가 와야 할 병원에 전문의가 없는 상황이다. 흉부외과가 없어 대동맥 박리 환자를 세 시간 만에 타 병원으로 이송하고, 분만 중 응급 상황이 생겼을 때 산부인과 의사가 당직을 서지 않아 논의가 지연되는 일들 — 이것은 개별 의사의 태만이 아니라,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이 경제적·법적으로 불리하게 설계된 구조의 필연적 결과다.
이번 수가 개편이 그 구조를 바꾸겠다는 방향은 옳다. 다만 나는 두 가지를 기다린다. 하나는 원가분석 결과의 공개다. 근거 없는 수가 조정은 또 다른 불신을 낳는다. 다른 하나는 실제 적용 항목 목록이다. ‘공공정책수가’라는 이름이 붙어도, 응급의학·중증외상·분만이 그 목록에 들어있지 않다면 현장은 달라지지 않는다. 정책의 진정성은 항상 디테일에 있다.
References
-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의결, 2026년 2월 25일. 건강보험 수가체계 개편 및 공공정책수가 도입 안건.
- OECD. Health at a Glance 2023: OECD Indicators. OECD Publishing, Paris. https://doi.org/10.1787/7a7afb35-en
- 조선비즈. “130兆 건강보험 수가 체계 개편…지역·필수 의료 보상 강화.” 2026년 2월 25일. https://biz.chosun.com/science-chosun/bio/2026/02/25/KMUJFCNV7BHN7NRCO7JP2OBDHU/
- The News Medical. “정부, 건강보험 지불제도 개편 본격 추진…성과 중심 보상체계 도입.” https://thenewsmedical.co.kr/건강보험-지불제도-개편-본격-추진/
- MSN/정은경 장관 인터뷰. “지역의사제·필수의료 개편, 내년 의료정책 핵심.” 2025–2026년 정책 발표. https://www.msn.com/ko-kr/news/other/정은경-지역의사제-필수의료-개편-내년-의료정책-핵심/ar-AA1RwtY1
- Rapportian. “[in-터뷰] 의사 수 확대 아닌 전달체계 개편·수가 정상화가 의료개혁.” https://www.rapportian.com/news/articleView.html?idxno=2334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