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요약
2026년 한국 의료법 개정으로 비대면진료가 전면 제도화된 데 이어, 건강보험 당국은 비대면진료 수가 구조에 단순 행위료를 넘어선 성과 연동 보상 요소를 도입하는 방향을 검토 중이다. 이는 “더 많이 진료할수록 더 많이 받는” 행위별 수가 체계의 한계를 보완하고, 비대면 의료가 단순 편의 서비스에 그치지 않도록 임상 질 관리 체계와 연결시키려는 시도다. 의료 현장에서는 이 정책 전환이 실제 환자 결과와 연결될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되고 있다.
정책 변화 요약: 제도화를 넘어 ‘질 관리’로
2026년 12월 24일 시행 예정인 의료법 개정안은 비대면진료, 전자처방전, 의약품안전사용정보시스템(DUR) 연계를 법제화하며 비대면 의료의 법적 근거를 확립한다. 그러나 제도화는 출발점일 뿐이다. 현재 건강보험심사평가원(HIRA)과 보건복지부가 병행 추진 중인 과제는 비대면진료의 수가 구조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다.
2026년 상반기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 논의 방향에 따르면, 단순 원격상담 행위료 외에 만성질환 관리 지속성, 재입원율, 약물 순응도 등 성과 지표를 수가에 연동하는 가치기반 보상(Value-Based Care, VBC) 모델이 논의 테이블에 올라와 있다. 이는 기존 행위별 수가제의 구조적 한계—과잉 진료 유인, 필수의료 저보상—를 비대면 채널에서 반복하지 않겠다는 정책적 의도를 담고 있다.
배경: 왜 비대면 수가에 성과 연동이 필요한가
비대면진료는 태생적으로 접근성 확대와 의료 질 저하 사이의 긴장 구조를 안고 있다. 2023~2025년 시범사업 기간 동안 누적된 데이터는 이 긴장을 수치로 보여준다. 당뇨·고혈압 등 만성질환 환자의 비대면 이용률은 빠르게 증가했지만, 추적 검사 이행률과 혈당·혈압 조절 목표 달성률은 대면 진료 대비 유의하게 낮은 경향을 보였다.
이 문제는 한국만의 것이 아니다. Khoong et al. (JAMA Internal Medicine, 2021)의 연구는 미국 안전망 병원 환경에서 팬데믹 기간 비대면진료가 저소득·고령층의 HbA1c 및 혈압 조절을 악화시켰음을 보고했다. 연구팀은 비대면 접근성 자체보다 비대면 진료의 질 모니터링 체계 부재가 더 큰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이 시사점은 제도 초기 단계에 있는 한국에 직접적으로 적용된다.
이러한 국제적 근거를 배경으로, 한국 정책 당국은 비대면 수가 설계 단계에서부터 성과 지표를 내재화하는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과거 행위별 수가제에서 반복된 실수—제도를 도입한 뒤 질 관리를 뒤늦게 덧붙이는 방식—를 피하겠다는 전략적 판단이다.
성과 기반 보상(VBC)의 구조와 국제 비교
가치기반 보상 모델은 단일한 형태가 아니다. 현재 논의되는 구조는 크게 세 층위로 구성된다. 첫째, 기본 행위료(비대면 상담 자체에 대한 수가), 둘째, 만성질환 관리 지속성 인센티브(3개월 이상 지속 모니터링 이행 시 가산), 셋째, 결과 연동 페널티·보너스(HbA1c, 혈압 조절 목표 달성 여부에 따른 수가 조정)가 그것이다.
미국 CMS(Centers for Medicare & Medicaid Services)의 원격 환자 모니터링(RPM) 수가 체계는 이 구조의 선례를 제공한다. RPM 수가는 기기 설치, 데이터 전송, 월별 임상 검토를 각각 별도로 보상함으로써 단순 접속 횟수가 아닌 관리 지속성을 보상 단위로 설정했다. 그 결과, Lam et al. (JAMDA, 2023)의 체계적 문헌고찰은 RPM 기반 만성질환 관리가 표준 대면 관리 대비 수축기혈압을 평균 5.9 mmHg 추가 감소시켰음을 보고했다. 이는 임상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으로, 비대면 모델이 적절한 수가 구조를 갖출 때 대면과 동등 이상의 결과를 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영국 NHS의 경우 QOF(Quality and Outcomes Framework)를 통해 만성질환 지표 달성에 따라 GP 수입의 일부를 연동시키는 구조를 오래전부터 운영해왔다. 이 제도의 한계—지표 게임, 고위험 환자 등록 기피—도 이미 학계에서 충분히 논의됐으며, 한국이 유사 구조를 도입할 때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의료 현장 영향: 응급의학과 관점에서 보면
비대면진료 제도화와 성과 보상체계 도입이 응급의학과와 무관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응급실 현장에서의 체감은 다르다. 만성질환 조절 실패 환자의 상당수는 1차 의료 접점에서의 추적 관리 이탈로부터 시작된다. 혈압이 2주 째 관리되지 않은 고혈압 환자, HbA1c가 12%를 넘은 채 응급실 문을 두드리는 당뇨 환자—이들의 응급 방문은 예고된 결과다.
비대면 만성질환 관리 플랫폼이 성과 지표와 연동된 수가 구조 위에서 운영된다면, 이는 1차 의료에서 만성질환 조절 실패를 조기에 감지하고 개입하는 안전망으로 기능할 수 있다. 실제로 응급실 과밀화의 상당 부분이 예방 가능한 만성질환 악화로 인한 방문이며, 이를 줄이는 것은 응급의료 자원의 적절한 배분 문제와 직결된다.
반면, 성과 지표 달성에 집착하는 1차 의료 제공자가 복잡한 환자를 회피하는 크리밍(creaming) 현상이 발생할 경우, 이 환자들은 오히려 응급실에 집중될 위험이 있다. 이 딜레마는 제도 설계 단계에서 환자 복잡도 보정(case-mix adjustment)을 필수 요소로 포함해야 한다는 근거다.
향후 전망: 세 가지 핵심 과제
비대면진료 성과 보상체계가 실효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세 가지 구조적 과제가 선결되어야 한다.
- 데이터 연계 인프라: 성과를 측정하려면 PHR(개인건강기록), EMR, 보험 청구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연계되어야 한다. 2026년 3월 전국 확대된 의료정보 공유 시스템이 이 기반을 제공할 수 있지만, 플랫폼 간 상호운용성 확보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 지표 선정의 임상적 타당성: HbA1c, 혈압, 콜레스테롤 수치 같은 중간 지표(surrogate endpoint)가 실제 임상 결과(사망, 입원, 합병증)와 강한 연관성을 가져야 한다. 지표를 위한 지표, 즉 숫자는 좋지만 환자는 나빠지는 구조를 경계해야 한다.
- 형평성 고려: 디지털 기기 접근성이 낮은 고령층, 저소득층이 비대면 기반 성과 관리에서 구조적으로 배제되지 않도록 하는 별도 보완 기전이 필요하다. 접근성 불평등을 제도가 강화하는 역설은 반드시 방지해야 한다.
이 세 가지 과제 중 하나라도 미흡하면, 비대면진료 성과 보상체계는 선의의 정책이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는 또 하나의 사례가 될 수 있다.
응급의학과 전문의의 한 마디
응급실에서 자주 목격하는 장면이 있다. 만성질환을 수년째 관리받던 환자가 어느 날 갑자기 혈압 220/120으로 실려 오는 경우다. 병력을 물으면 돌아오는 답은 대부분 비슷하다. “병원 가기 귀찮아서 그냥 참았어요.” 비대면진료는 이 귀찮음의 장벽을 낮출 수 있는 실질적인 도구다. 그러나 도구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올바른 설계가 필요하다.
성과 기반 보상체계는 비대면진료가 단순 접속 서비스를 넘어 임상 관리 도구로 기능하게 만드는 핵심 장치다. 다만, 나는 이 제도가 현장에서 살아남으려면 두 가지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본다. 첫째, 성과 지표는 임상 결과에 가까울수록 좋다—중간 지표의 과잉 신뢰는 위험하다. 둘째, 복잡한 환자를 기피하지 못하도록 하는 보정 장치가 수가 구조 안에 내재되어야 한다. 이 두 원칙이 흔들리면, 비대면진료는 건강한 환자만 관리하는 편의 서비스로 전락하고, 가장 많이 필요한 환자들은 다시 응급실 문을 두드리게 된다.
References
- Khoong EC, et al. “Assessing Telemedicine Unreadiness Among Patients With Chronic Conditions During the COVID-19 Pandemic.” JAMA Internal Medicine. 2021;181(8):1129–1131.
- Lam K, et al. “Remote Patient Monitoring and Clinical Outcomes in Adults With Hypertension: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JAMDA. 2023;24(5):665–674.
- Korean Ministry of Health and Welfare. 의료법 개정안 (비대면진료, 전자처방전, 의약품안전사용정보시스템). 2026년 12월 24일 시행 예정. 2026.
- 건강보험심사평가원(HIRA). 2026년 건강보험 수가 개편 방향.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발표자료. 2026.
- Roland M. “Linking Physicians’ Pay to the Quality of Care — A Major Experiment in the United Kingdom.” NEJM. 2004;351(14):1448–14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