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2026년 6월 말, 대통령 직속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AI전략위)가 보건복지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각각 추진해온 디지털헬스케어 관련 법안의 일원화에 본격 착수했다. 복지부는 ‘디지털헬스케어 및 보건의료정보 활용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산업부는 ‘AI 바이오헬스 산업 육성법’을 별도로 추진해왔는데, AI전략위 내 법률 태스크포스(TF)가 이 두 법안의 통합을 조율 중이다. 국회에서도 보건의료데이터의 안전한 활용과 산업 육성을 위한 법적 기반 마련이 핵심 의제로 부상하면서, 정부는 올해 안 법 제정을 목표로 규제샌드박스 도입 및 데이터 표준화 정책을 병행하고 있다.
이 법안이 4년 넘게 표류해온 핵심 이유는 부처 간 관할권 다툼이다. 복지부는 환자 안전과 의료 데이터 보호를 전면에 내세우고, 산업부는 산업 육성과 규제 완화를 우선시하면서 두 접근이 충돌해왔다. 이번 AI전략위의 개입은 단순한 부처 조율이 아니라, 디지털헬스케어를 ‘산업 육성’과 ‘의료 안전’이라는 이중 목표를 동시에 달성해야 하는 정책 영역으로 재정의하겠다는 신호다.
현재 규제 공백의 실체
법안이 없다는 것은 단순히 근거 규정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현재 국내 AI 의료기기와 디지털치료제는 의료기기법 체계 아래에서 심사되고, 보건의료 데이터 활용은 개인정보 보호법과 의료법의 교차 적용을 받는다. 이 구조에서 혁신적 디지털헬스케어 제품은 기존 분류 체계에 끼워 맞추거나, 규제샌드박스를 통해 한시적 허용을 받는 방식으로 운영되어왔다.
실제로 이 문제는 이미 국제적 맥락에서도 공론화되고 있다. 2026년 6월 발효된 EU AI Act Omnibus는 AI 의료기기 제조사에 대한 투명성 요건과 이중 규제 방지(No Duplication 원칙)를 명문화했고(PatientGuard, 2026), FDA는 SaMD(소프트웨어 의료기기)에 대한 임상검증 기준을 강화하면서 AI 의료기기 900개 승인 이후 실제 임상 결과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FDA, 2026). 한국이 이 흐름에서 단독 법 체계를 갖추지 못한 채 개별 고시와 가이드라인으로 대응해온 것은 글로벌 규제 정합성 측면에서도 분명한 공백이었다.
통합 법안이 임상 현장에 미치는 의미
디지털헬스케어 통합법의 핵심 임상적 의미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의료 데이터 표준화와 이차 활용 경로의 명확화다. 현재 국내 EMR 데이터는 병원마다 상이한 코드 체계와 보안 정책 아래 분산되어 있어, AI 알고리즘 학습에 필요한 대규모 표준화 데이터셋 구축이 사실상 어렵다. 법 제정이 이뤄지면 보건의료 데이터 활용 기관, 동의 절차, 익명화 기준이 단일 법령으로 규정되어 실시간 데이터 활용 연구가 가능해진다. 이는 단순한 행정 편의가 아니라, AI 기반 임상의사결정지원시스템(CDSS)의 국산 학습 데이터 품질 향상과 직결된다.
둘째, 디지털치료제(DTx) 급여 경로의 현실화다. 현재 DTx는 의료기기법상 승인을 받더라도 건강보험 급여 편입 경로가 불명확하다. 통합법이 규제샌드박스 조항을 포함하면, 임상 근거 축적 기간 중 조건부 급여 적용이 가능해질 수 있다. 이는 불면증, 만성통증, 당뇨 관리 등 국내에서 이미 승인된 DTx 제품들이 실제 처방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든다는 점에서 임상적으로 중요하다.
셋째, AI 의료기기 사후 관리(Post-market Surveillance) 체계 구축이다. 현재 국내에는 AI 의료기기가 허가 이후 임상 성능을 어떻게 모니터링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법적 의무가 없다. FDA의 AI 경고장 발송 사례에서 보듯, 허가 당시의 성능과 실제 임상 환경에서의 성능은 다를 수 있다. 통합법에 사후 임상검증 의무가 포함된다면, 알고리즘 드리프트(algorithm drift)로 인한 임상 오류를 체계적으로 감지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기대와 우려 사이: 법안의 현실적 한계
그러나 법안 통합이 자동으로 현장 변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몇 가지 구조적 한계를 짚어둘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부처 간 이해충돌이 법문에 반영될 가능성이 있다. 복지부는 의료 안전을, 산업부는 산업 육성을 우선시하는 만큼, 통합 법안이 두 가치를 절충하는 과정에서 어느 쪽도 명확히 규정하지 못하는 ‘중간 지점’에 머물 수 있다. 예컨대, 데이터 이차 활용 범위를 넓게 허용하면서 동의 절차를 강화하는 식의 내부 모순이 발생할 수 있고, 이는 실무 적용 시 혼란을 낳는다.
또한 개인정보 보호와 의료 데이터 활용의 균형 문제는 법안 단독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현행 개인정보 보호법 체계 아래에서 의료 데이터는 민감정보로 취급되며, 이차 활용 동의 절차는 연구 목적이라도 까다롭다. 디지털헬스케어법이 특별법으로 개인정보 보호법의 적용 예외를 규정하지 않으면, 데이터 활용의 실질적 범위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수 있다. 2026년 6월 기준, MDPI에 게재된 AI 신약 개발 관련 내러티브 리뷰(MDPI Pharmaceuticals, 2026)는 AI가 임상 결과를 실질적으로 개선했는지 여전히 불분명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규제 환경이 임상 근거 생산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구조적 문제를 경고했다. 법안이 먼저 만들어지고 임상 근거가 뒤따르는 구조는 국내도 예외가 아닐 수 있다.
마지막으로 규제샌드박스가 ‘혁신 허용’이 아닌 ‘검증 우회’로 활용될 위험이 있다. 샌드박스 제도는 임상 근거가 불충분한 제품도 일정 기간 시장에 진입할 수 있게 허용하는데, 이 기간 중 발생하는 피해에 대한 책임 소재가 명확하지 않으면 환자 안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응급의학과 전문의의 한 마디
응급실에서 AI 기반 패혈증 조기 경보 알고리즘이 뜨는 것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이게 우리 환자 집단으로 검증됐나?’는 질문이다. FDA나 식약처 허가를 받은 제품이라도, 학습 데이터의 인구 구성이 다르면 성능은 다르다. 알고리즘은 특정 인구집단에서 최적화되고, 현장에서는 다른 집단에 적용된다.
이번 디지털헬스케어 통합법 추진은 이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기회다. 국내 보건의료 데이터가 표준화되고 이차 활용 경로가 열리면, 국내 환자 데이터로 학습하고 검증된 AI 의료기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 그것이 단순히 ‘국산화’의 의미가 아니라, 임상 성능의 신뢰성을 높이는 실질적 기반이 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다만 법이 만들어지는 속도와 임상 근거가 쌓이는 속도는 다르다. 4년을 표류한 법안이 올해 안에 통과되더라도, 그 법이 실제로 작동하는 규제 생태계를 만들기까지는 또 다른 시간이 필요하다. 법안의 통과는 시작이지, 완성이 아니다. 임상 현장은 그 간극을 인지하면서 제도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
References
-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법률 TF, 디지털헬스케어 법안 일원화 추진 발표, 이데일리, 2026년 6월 29일.
- 디지털헬스케어법 제정 추진 관련 기대와 우려, 약사공론, 2026년 7월 2일. (https://www.kpa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37816)
- PatientGuard. “The AI Act Omnibus Explained: What the 2026 EU Rules Mean for Medical Device and IVD Manufacturers.” June 15, 2026. (https://patientguard.com/the-ai-act-omnibus-explained-what-the-2026-eu-rules-mean-for-medical-device-and-ivd-manufacturers/)
- Klock S. “FDA Rules, Regulations and Resources for Artificial Intelligence.” Holland & Knight, June 3, 2026. (https://www.hklaw.com/en/insights/publications/2026/06/fda-rules-regulations-and-resources-for-artificial-intelligence)
- MDPI Pharmaceuticals. “AI in Drug Discovery: Clinical Failures, Regulatory Reality.” Vol. 19, No. 6, 2026. DOI: 10.3390/ph19060916. (https://www.mdpi.com/1424-8247/19/6/916)
- 디지털헬스타임즈. “[주간 종합 리포트] 규제·빅데이터·플랫폼 삼각 편대 완성… K-바이오 2026 상반기 결산.” 2026년 6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