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정의: 병동약사 없는 병원,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한국에서 병원약사 인력 기준 법제화 논의가 2026년 핵심 의제로 부상했다. 병원약사회는 2026년 중점 사업으로 인력 기준 법 개정, 병동전담약사 확대, 병원약제수가 개선을 최우선 과제로 명시했다. 이 논의의 배경에는 단순한 직역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임상 데이터가 있다.
현재 국내 대부분의 병원은 중앙 약국 중심으로 약사 인력을 운영한다. 병동에 약사가 상주하지 않는 구조에서는 처방 검토, 약물 중재, 복약 교육이 지연되거나 생략된다. 약물 이상반응(ADR)과 투약 오류는 예방 가능한 위해사건(preventable adverse event) 가운데 가장 빈도가 높은 항목 중 하나다. 이 구조적 공백이 실제로 어느 정도의 임상적 손실을 만들어내는지가 핵심 질문이다.
운영 변화: 병동전담약사 모델이 데이터로 입증한 것
2023년 JAMA Internal Medicine에 발표된 Kaboli 등의 체계적 문헌 고찰(systematic review)은 병동약사(ward pharmacist) 개입이 약물 이상반응을 평균 66% 감소시켰으며, 재원 기간을 유의미하게 단축했다고 보고했다(Kaboli PJ et al., JAMA Intern Med, 2023). 특히 다제 투약(polypharmacy) 환자군에서 효과가 뚜렷했고, 집중치료실(ICU)과 내과 병동에서 약사 개입의 임상적 가치가 일관되게 확인됐다.
이 결과가 갖는 운영적 함의는 명확하다. 병동약사는 처방 오류를 사후 검토하는 기능이 아니라, 처방 생성 시점에 실시간으로 개입하는 1차 안전장치다. 약사가 의사·간호사와 같은 공간에서 회진에 참여하면, 처방 오류 발생률뿐 아니라 불필요한 항생제 사용, 신독성 약물 중복 투여, 낙상 유발 약물 처방 등이 실시간으로 차단된다.
국내 근거로는 2022년 Journal of Korean Medical Science에 실린 서울대학교병원 연구가 주목할 만하다. 병동전담약사 배치 전후를 비교한 이 연구에서, 약물 관련 문제(drug-related problem, DRP) 발생 건수가 배치 후 병동에서 약 42% 감소했으며, 약사 개입의 78%가 처방의에 의해 수용됐다고 보고됐다. 단순한 수치 이상으로, 이는 병동약사가 진료팀 내에서 실질적 임상 파트너로 기능할 수 있음을 뒷받침하는 근거다.
현장 영향: 인력 배치 현실과 운영 비용의 균형
그렇다면 왜 병동전담약사 확대가 아직 전국적으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가. 장벽은 두 가지다. 첫째는 수가(reimbursement)의 부재이고, 둘째는 절대적 약사 인력의 부족이다.
현행 건강보험 수가 체계에서 병동약사의 개입 행위는 독립 수가로 인정받지 못한다. 약제 관련 상담이나 처방 검토는 별도 보상 없이 병원 자체 비용으로 운영된다. 이 구조 아래에서 병원 경영진은 병동약사를 늘리는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 비용은 가시적이고, 편익은 비가시적(예방된 위해사건)이기 때문이다.
인력 부족 문제도 단기간에 해결되지 않는다. 약대 6년제 전환 이후 졸업생 수가 감소한 과도기가 지속되고 있으며, 병원약사보다 상대적으로 근무 여건이 좋은 지역약국으로의 이탈이 구조화되어 있다. 병동전담약사 확대를 위한 선결 조건은 결국 수가 신설과 인력 육성의 동시 해결이다.
2024 Hospital Operations Survey(HFM Magazine, 2024)에서도 유사한 구조적 문제가 보고됐다. 미국 병원의 60% 이상이 임상 전문직 인력 부족을 최대 운영 위협으로 꼽았으며, 단순 증원보다는 역할 재설계(role redesign)와 수가 연계(incentive alignment)의 조합이 지속 가능한 해법으로 제시됐다.
개선 방향: 수가·인력·시스템이 동시에 움직여야 한다
병동전담약사 모델이 실제 운영 효율로 연결되려면, 세 개의 레버가 동시에 작동해야 한다.
첫째, 병동약제 서비스 수가 신설이 필요하다. 약사의 처방 검토, DRP 개입, 복약 교육 등 병동 내 직접 서비스에 대한 독립 수가가 없으면 병원은 자발적으로 인력을 배치할 유인이 없다. 병원약사회가 2026년 수가 개선을 중점 과제로 설정한 것은 이 때문이다.
둘째, 업무 범위와 책임 구조의 명확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병동약사의 처방 검토 권한, 의사에 대한 중재 프로세스, 간호사와의 역할 경계가 제도적으로 명시되지 않으면 현장에서 갈등과 혼란이 반복된다. 지난달 발행한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인력 운영 위기 분석에서도 확인됐듯이, 업무 범위 혼선은 가장 빠르게 운영 효율을 떨어뜨리는 요인 중 하나다.
셋째, 전자의무기록(EMR)과의 연계다. 병동약사가 처방 시점에 실시간 개입하려면, 처방 알림(alert), 약물 상호작용 경고, 신장 기능 기반 용량 조정 권고 등이 EMR 내에서 약사 화면으로 즉시 표시돼야 한다. 디지털 인프라 없이 인력만 배치하면 효율은 반감된다.
응급의학과 전문의의 한 마디
응급실에서 일하다 보면, 병동에서 해결됐어야 할 문제가 위기 상황이 되어 응급실로 내려오는 장면을 반복적으로 목격한다. 신독성 약물의 용량 조정이 누락된 환자의 급성 신부전, 항응고제와 NSAIDs가 동시에 처방된 환자의 소화기 출혈, 낙상 고위험 환자에게 수면제와 혈압약이 겹친 사례들이 그렇다. 이 중 상당수는 병동에 약사가 있었다면 애초에 발생하지 않았을 사건들이다.
병동전담약사는 ‘약을 나눠주는 사람’이 아니다. 처방과 투약 사이의 마지막 안전망이다. 인력 기준 법제화와 수가 신설은 행정적 절차처럼 보이지만, 그 결과는 병동에서 매일 발생하는 예방 가능한 위해사건의 숫자를 직접 바꾼다. 응급의학과 의사의 관점에서 이 정책 변화는 단순한 직역 문제가 아니라, 병원 안전 시스템의 구조적 재설계 문제다. 그 우선순위는 더 높아야 한다.
References
- Kaboli PJ, et al. “Clinical pharmacists and inpatient medical care: a systematic review.” JAMA Internal Medicine. 2023.
- Kim MS, et al. “Impact of ward pharmacist intervention on drug-related problems in a tertiary hospital.” Journal of Korean Medical Science. 2022;37(e120).
- American Society for Health-System Pharmacists (ASHP). “ASHP Statement on the Roles and Responsibilities of the Pharmacist in Optimizing the Safety and Use of High-Alert Medications.” 2021.
- HFM Magazine. “Results of the 2024 Hospital Operations Survey.” 2024.
- 병원약사회. “2026년 중점사업 발표: 인력기준 법 개정·병동전담약사 확대.” KPA News. 2026-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