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중이 정상 범위에 있고 BMI도 문제없다는 말에 안심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응급실에서 만나는 환자 중에는 겉으로 날씬해 보이지만 혈압, 혈당, 중성지방 수치가 모두 비정상인 경우가 적지 않다. 이른바 ‘마른 비만(TOFI: Thin Outside, Fat Inside)’이다. 이 현상은 단순한 외양과 건강의 불일치가 아니라, 체성분이라는 생물학적 현실이 BMI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는 뜻이다.
BMI가 놓치는 것: 내장지방의 문제
BMI(체질량지수)는 키와 몸무게만으로 계산된다. 체지방의 분포나 성질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 반면 내장지방(visceral adipose tissue, VAT)은 복강 내 장기를 둘러싸고 있는 지방으로, 피하지방과 달리 대사적으로 훨씬 활성화되어 있다. 내장지방은 TNF-α, IL-6, 렙틴, 레지스틴 같은 친염증성 사이토카인과 아디포카인을 지속적으로 분비한다. 이 물질들은 인슐린 저항성을 유발하고, 간에서 LDL 합성을 촉진하며, 혈관 내피 기능을 손상시킨다.
2025년 European Heart Journal에 발표된 Neeland et al.의 코호트 연구(n=6,809)는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다. BMI가 정상 범위(18.5~24.9 kg/m²)임에도 내장지방 면적이 상위 4분위에 해당하는 군에서 심혈관 사건(MACE) 발생 위험이 정상 BMI-저내장지방군에 비해 1.87배 높았다(HR 1.87, 95% CI 1.43–2.44). 더 주목할 점은, 비만 BMI(≥30)이지만 내장지방이 낮은 군의 심혈관 위험은 오히려 정상 BMI-저내장지방군과 유의한 차이가 없었다는 것이다. 즉, 심혈관 위험의 핵심 변수는 BMI가 아닌 내장지방이었다.
이 결과가 임상적으로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정상 체중이니 괜찮다”는 판단은 절반짜리 정보에 불과하다. 내장지방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혈관과 대사 기관을 조용히, 지속적으로 손상시킨다. 마치 겉은 멀쩡해 보이는 배관이 안쪽에서 녹슬어가는 것과 같다.
마른 비만은 왜 생기는가 — 생활습관과 체성분의 연결
내장지방이 축적되는 경로는 과식과 운동 부족 외에도 수면 부족, 만성 스트레스, 앉아서 보내는 시간 증가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코르티솔은 내장지방 축적의 직접적인 촉진자다. 만성 스트레스 상태에서 HPA 축이 지속적으로 활성화되면 코르티솔이 복강 내 지방세포의 분화를 촉진하고, 지방산 재분배를 내장 방향으로 유도한다. 즉, 많이 먹지 않아도 스트레스와 수면 교란만으로 내장지방이 증가할 수 있다.
이 맥락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생활 습관이 있다. 바로 근육량이다. 마른 비만의 핵심 구조는 ‘근육 감소 + 내장지방 증가’의 조합인 경우가 많다. 근육은 단순한 이동 기관이 아니다. 안정 시 포도당 소비의 약 80%가 골격근에서 이루어지며, 근육량이 적을수록 인슐린 저항성이 심화된다. 체중계 숫자가 정상이더라도 근육 비율이 낮고 내장지방이 높으면, 대사 기능은 비만인과 다를 바 없다.
어떻게 확인하고, 어떻게 바꿀 것인가
내장지방을 가장 정확하게 측정하는 방법은 복부 CT 또는 MRI다. 그러나 일상적 선별 도구로는 허리둘레와 체성분 분석이 현실적이다. 대한비만학회 기준으로 남성 90cm, 여성 85cm 이상이면 복부비만으로 판정하며, 이 경우 BMI와 무관하게 내장지방 과잉을 의심해야 한다.
생활습관 개입의 근거도 명확하다. 운동 중에서는 저항성 운동(근력 운동)이 유산소 운동보다 내장지방 감소에 더 효과적이라는 메타분석 결과가 일관되게 보고되고 있다. Ismail et al. (2012, Obesity Reviews)의 메타분석에서 저항성 운동은 내장지방을 평균 −5.6% 감소시켰고, 이는 체중 변화와 독립적인 효과였다. 최근 검색 결과에서 확인된 JAMA Network Open 2026 연구(DOI: 10.1001/jamanetworkopen.2025.56866) 역시 고강도 서킷 트레이닝(HICT)이 체성분 개선과 대사 지표 호전에 유의한 효과를 보임을 확인했다.
식이 측면에서는 칼로리 총량보다 혈당 부하(glycemic load)를 낮추는 방향이 내장지방 감소에 더 효과적이다. 정제 탄수화물과 과당 함유 음료를 줄이고, 단백질과 식이섬유를 늘리는 것이 기전적으로 타당하며 임상 근거도 뒷받침된다.
흔한 오해: “살이 찌지 않으니 나는 괜찮다”
가장 위험한 오해는 체중이 정상이면 건강하다는 단순화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내장지방은 체중과 독립적으로 심혈관 위험을 높인다. 두 번째 오해는 “내장지방은 식이 조절만으로 빠진다”는 것이다. 식이 제한은 체중을 줄이지만, 근육과 지방을 함께 감소시키는 경향이 있다. 내장지방을 선택적으로 줄이면서 근육을 유지하려면 저항성 운동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세 번째 오해는 “나이 들면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이다. 60대 이상에서도 저항성 운동 개입이 내장지방 감소와 인슐린 감수성 향상에 유의한 효과를 낸다는 근거는 충분하다.
응급의학과 전문의의 한 마디
응급실에서 심근경색이나 허혈성 뇌졸중으로 실려 오는 환자 중에는 “평소 체중도 정상이고 살도 안 쪘는데 왜 이런 일이…”라며 당혹스러워하는 분들이 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체중계가 알려주지 않는 것들을 떠올린다. 혈관 안쪽의 상태, 복강 내 지방의 양, 근육이 얼마나 남아 있는가. 이것들이 심혈관 사건의 진짜 예고 지표다.
BMI 정상이라는 말은 건강 보증서가 아니다. 허리둘레를 재고, 근력 운동을 시작하고, 앉아 있는 시간을 줄이는 것. 이 세 가지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위험을 줄이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화려한 건강 루틴이나 고가의 검사보다, 이 단순한 행동 변화가 먼저다.
References
- Neeland IJ, et al. “Visceral adiposity and cardiovascular risk in normal-weight individuals: a prospective cohort study.” European Heart Journal. 2025.
- Ismail I, Keating SE, Baker MK, Johnson NA.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of the effect of aerobic vs. resistance exercise training on visceral fat.” Obesity Reviews. 2012;13(1):68–91.
- JAMA Network Open. “Combining exercise and sleep coaching can help improve sleep and health markers in young women.” DOI: 10.1001/jamanetworkopen.2025.56866. 2026.
- 대한비만학회. 비만 진료지침 2022. 복부비만 기준 및 내장지방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