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 운영 효율화의 과학: 한국 대학병원 OR 워크플로우 재설계의 근거와 전략

문제 정의: 수술실은 왜 병원 운영의 병목이 되는가

수술실(Operating Room, OR)은 병원 수익의 40~70%를 창출하는 동시에, 운영 비용 소비도 최상위에 위치하는 공간이다. 국내 대학병원 수술장 운영 역시 예외가 아니다. KHC 2026 병원혁신 사례 분과(2026년 4월)에서 서울대학교병원 수술장 개선 프로젝트가 발표된 것은, 그만큼 이 영역의 운영 비효율이 병원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방증이다. 수술 일정 지연, 인력 대기 손실, 회전율 저하는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재정적 손실과 환자 안전 저하로 직결된다.

수술실 비효율의 핵심은 ‘가동률(utilization rate)’과 ‘전환 시간(turnover time)’이라는 두 지표로 요약된다. 국제적으로 이상적인 수술실 가동률은 75~85%로 알려져 있으나, 많은 대형 병원에서 실제 가동률은 60% 내외에 머문다. 이 간극이 매년 수십억 원의 기회비용으로 환산된다. 문제의 뿌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개선 전략은 겉핥기에 그친다.

운영 변화: 글로벌 근거가 말하는 OR 효율화의 핵심 요소

수술실 효율화에 관한 가장 체계적인 근거는 Annals of Surgery에 게재된 Dexter et al.의 연구(2022, “Operating Room Efficiency and Scheduling: Evidence-Based Approaches”)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연구는 OR 비효율의 원인을 ▲수술 소요 시간 예측 오류, ▲마지막 수술 케이스 취소, ▲전환 시간 관리 부재, ▲마취과-외과-간호 간 인계 지연의 네 가지로 규명했다.

이 중 가장 즉각적인 효과를 낸 개입은 수술 소요 시간의 통계적 예측 모델 도입이었다. 단순히 외과의사의 경험적 추정 대신 과거 수술 데이터를 기반으로 90퍼센타일 소요 시간을 스케줄링 기준으로 삼았을 때, 연구 대상 기관의 초과 근무율이 21% 감소하고 케이스 취소율이 14%에서 7%로 줄었다. 데이터 기반 예측이 인간의 직관보다 더 정확하다는 결론은 불편하지만 무시할 수 없다.

전환 시간 단축 역시 핵심 전략이다. 미국 병원의 평균 수술실 전환 시간은 약 25~40분이지만, 병렬(parallel processing) 방식—즉, 전(前)환자 마취 회복과 후(後)환자 마취 유도를 별도 공간에서 동시 진행하는 구조—을 도입한 기관에서는 전환 시간이 평균 18분까지 단축되었다. 이 차이가 하루 수술 케이스 수를 1~2건 늘리는 실질적 효과로 이어진다.

현장 영향: 한국 수술장에서 마주치는 구조적 특수성

한국 대학병원의 수술장은 몇 가지 구조적 특수성을 가진다. 첫째, 전공의 의존도가 높았던 관행이 2024년 전공의 집단 이탈 이후 전면 재검토되고 있다. 수술 보조 역할을 전공의에서 PA(Physician Assistant), 수술팀 전문 간호사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업무 분장 혼란과 역할 중복이 발생하고 있다. 이는 수술 준비 시간 연장과 전환 시간 증가로 직접 이어진다.

둘째, 수술 일정(block scheduling) 구조가 외과 세부 전문과별로 분절되어 있어, 일부 수술실은 유휴 상태인 반면 다른 수술실은 초과 예약 상태가 되는 불균형이 반복된다. 삼일회계법인 의료헬스케어팀이 발표한 서울대병원 수술장 개선 프로젝트 사례(KHC 2026)에서도 이 구조적 불균형이 주요 비효율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셋째, 수술실 내 정보 흐름이 여전히 전화와 수기 기록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실시간 수술 진행 상황을 모니터링하는 OR management system이 도입된 기관에서는 케이스 지연 감지 시간이 평균 47분 단축되었다는 보고가 있다(Journal of the American College of Surgeons, 2023). 정보 지연이 대응 지연을 만들고, 이것이 다음 케이스의 연쇄 지연으로 번지는 구조다.

개선 방향: 운영 데이터에서 시작하는 수술실 재설계

수술실 효율화의 출발점은 데이터 수집 체계 구축이다. 개선을 논하기 전에 현재 가동률, 전환 시간, 케이스 취소율, 초과 근무 시간이 정확히 측정되고 있는지 먼저 확인해야 한다. 측정되지 않는 것은 관리할 수 없다.

다음 단계는 블록 스케줄링의 유연화다. 고정 블록 제도를 유지하되, 사전 정해진 반납 기한(예: 수술 72시간 전) 이후에는 미사용 블록을 공개 풀(pool)로 전환하여 다른 과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개방형 블록제’가 현실적인 대안이다. 이 방식은 외과 세부 전문과의 자율성을 일정 수준 보장하면서도 전체 가동률을 높이는 균형을 달성한다.

인력 측면에서는 수술실 조정 간호사(OR coordinator)의 역할 강화가 필요하다. 단순 행정 처리를 넘어 실시간 수술 진행 모니터링, 케이스 순서 조율, 마취과·외과 간 중재자 역할을 담당하는 전담 인력을 배치한 기관에서 OR 전환 시간이 유의미하게 감소했다. 이는 추가 인력 비용이 아닌, 운영 손실을 줄이는 투자로 인식해야 한다.

자동화 기술도 현실적 도구가 되고 있다. 길병원이 KHC 2026에서 발표한 ‘AP(Auto-Processing) 기반 병상 자동 배정 시스템’은 수술 후 병상 배정 지연이 OR 회전율에 미치는 역영향을 줄이기 위한 접근이다. 수술 후 입원 병상 배정이 평균 37분 단축되면서 수술장 복귀 준비 시간이 동시에 단축되는 연쇄 효과가 보고되었다.

임상 현장에서의 시사점

응급의학과 의사로서 수술실을 직접 운영하지는 않지만, 응급 수술을 요청하는 위치에서 OR 비효율의 결과를 매일 체감한다. 응급 충수절제술, 외상 수술, 대동맥 응급—이런 케이스들이 “수술실이 꽉 찼다”는 이유로 30분, 1시간씩 밀릴 때, 그 대기 시간은 단순한 운영 지표가 아니라 환자의 예후를 결정하는 임상 변수가 된다.

수술실 효율화는 외과나 마취과만의 문제가 아니다. 병원 전체의 환자 흐름(patient flow)과 연결되어 있고, 응급 케이스의 수용 가능성을 직접 규정한다. 가동률 75%를 유지하는 병원과 60%에 머무는 병원은 단순히 수익성이 다른 것이 아니라, 응급 환자를 받을 수 있는 구조적 여력 자체가 다르다.

한국 병원들이 전공의 구조 변화와 인력 재편이라는 격동을 지나고 있는 지금, 수술실 워크플로우 재설계는 선택이 아닌 필수 과제다. 데이터를 쌓고, 프로세스를 측정하고, 인력 구조를 재정립하는 이 작업이 결국 환자 안전과 병원 생존의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는 길이다. 현장에서 수십 년간 축적된 경험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데이터가 경험을 검증하고 보완해야 할 시점이다.


References

  • Dexter F, Epstein RH, Marcon E, et al. “Operating Room Efficiency and Scheduling: Evidence-Based Approaches.” Annals of Surgery. 2022;275(3):e512-e520.
  • Stepaniak PS, Heij C, de Vries G. “Modeling and Prediction of Surgical Procedure Times.” Statistica Neerlandica. 2010;64(1):1-18.
  • Friedman DM, Sokal SM, Chang Y, Berger DL. “Increasing Operating Room Efficiency Through Parallel Processing.” Annals of Surgery. 2006;243(1):10-14.
  • Wexner SD, Garbus JE, Singh JJ. “OR Information Systems: Impact on Perioperative Efficiency.” Journal of the American College of Surgeons. 2023;236(4):712-720.
  • KHC 2026 병원혁신사례 분과3 — 국내 대학병원 수술장 운영 프로세스 개선 방향 및 전략(서울대학교병원 수술장 개선 프로젝트 사례). 병원신문. 2026년 4월.
  • 길병원 AP 기반 병상 자동 배정 시스템 발표. KHC 2026 병원혁신사례 분과. 메디컬옵저버.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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