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변화 요약
2026년 2월, 보건복지부·기획재정부·교육부는 세종 충남대병원에서 ‘지역·필수 의료 공급 체계 간담회’를 공동 개최하고 130조 원 규모의 건강보험 수가 체계 개편과 함께 국립대병원을 중심으로 한 Hub & Spoke 협력 네트워크 구축 계획을 공식화했다. 이번 정책의 핵심은 단순한 수가 인상이 아니라, 고위험·저보상 구조로 고착된 필수의료 분야에 공공정책수가를 새롭게 도입하고, 중증·최종치료 역량을 갖춘 국립대병원을 지역 의료의 거점으로 육성하는 구조적 재편이다. 전국 10개 국립대병원장이 직접 간담회에 참석했다는 사실은 이 정책이 선언에 그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이번 개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 의료 공급 체계가 왜 이 지점에 이르렀는지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배경: 왜 지금, 왜 Hub & Spoke인가
한국의 건강보험 행위별 수가제는 수십 년간 ‘많이 할수록 더 받는’ 구조를 고착시켰다. 그 결과, 외래 처방이나 경증 시술처럼 반복 수익이 가능한 분야의 수가는 상대적으로 두텁게 보장된 반면, 응급외상·중증내과·산과·소아청소년과처럼 1회 처치에 고도의 전문성과 팀 자원이 집중되는 필수의료 영역은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가를 수십 년째 감수해 왔다. 전공의 수련 기피, 지방 병원 필수과 폐쇄, 수도권 쏠림 현상은 이 구조의 필연적 귀결이다.
학술적으로도 이 문제는 반복적으로 지적되었다. Hwang et al. (2023, Health Policy and Management)은 한국 지역 간 의료 접근성 격차 분석에서, 권역 외상센터·응급의료기관의 지리적 분포 불균형이 중증외상 환자의 생존율 격차와 직결된다는 근거를 제시했다. 또한 OECD Health at a Glance 2025는 한국의 1인당 외래 방문 횟수가 OECD 최고 수준(연간 약 15.7회)인 반면, 중증 입원 환자 1인당 실질 의료비는 OECD 평균을 크게 하회한다는 역설적 구조를 명확히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 아래, 정부가 선택한 처방이 바로 Hub & Spoke 네트워크다.
의료현장 영향: 네트워크 구축이 실제로 바꾸는 것
Hub & Spoke 모델은 항공 노선 체계에서 차용한 개념이다. 중심 거점(Hub)이 광역 권역의 중증·최종치료를 담당하고, 위성 의료기관(Spoke)이 경증과 만성질환 관리를 분담한 뒤 필요 시 Hub로 신속 이송하는 구조다. 이번 정책에서 Hub 역할은 전국 10개 국립대병원이 맡는다.
임상 현장에서 이 변화가 의미하는 바는 세 가지로 정리된다.
- 중증 환자 이송 경로의 표준화: 현재 지역 응급실에서는 중증 뇌졸중·심근경색·중증외상 환자를 어느 병원으로 보낼지 명확한 기준 없이 개별 판단에 의존한다. Hub 지정과 이송 프로토콜이 정착되면 골든타임 내 전문 처치 가능성이 높아진다.
- 필수과 수련의 구조적 보장: Hub 병원에 중증 케이스가 집중되면, 전공의와 전임의의 수련 밀도가 높아진다. 필수의료 기피의 핵심 원인 중 하나가 “힘든데 배울 케이스도 없다”는 악순환이었음을 감안하면, 이 효과는 장기적으로 인력 공급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 공공정책수가의 실질적 작동 조건: 수가를 올려도 환자가 없으면 의미가 없다. Hub 지정과 연계된 공공정책수가는 ‘거점 지정 → 환자 집중 → 수익 발생 → 인력 유지’의 선순환을 만들기 위한 구조적 장치다.
그러나 이 모델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단순히 병원을 지정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향후 전망을 함께 살펴야 하는 이유다.
향후 전망: 구조 개편의 성패를 가르는 변수
정부는 2026년 상반기 내에 비용 분석 기반 상대가치 조정 방안을 마련하고, 과보상 수가를 낮춰 확보한 재원을 저보상 필수의료 수가 인상에 투입하는 ‘파이 재배분’ 방식을 택했다. 이 접근은 건강보험 총지출을 늘리지 않고도 구조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수가 삭감 대상이 되는 과목·행위의 반발이 예상된다는 점에서 정치적 난관이 만만치 않다.
또한 Hub & Spoke 네트워크의 실효성은 결국 ‘이송 인프라’에 달려 있다. 고속도로망이 부실한 지역에서는 Spoke에서 Hub까지의 이송 시간이 골든타임을 초과할 수 있다. 응급의료 전용 헬기(닥터헬기) 확대, 지역 응급의료기관과 Hub 간 실시간 협진 시스템 구축이 병행되지 않으면 이 정책은 반쪽짜리에 그칠 가능성이 있다.
나아가, OECD 사례를 보면 Hub & Spoke 모델이 성공적으로 정착한 국가들(독일, 프랑스, 일본)은 공통적으로 Hub 지정에 단순 행정 명령이 아니라 중증도 케이스 처리 실적, 전문 인력 보유 기준, 이송 네트워크 연계 실적 등 다층적 인증 체계를 적용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국립대병원이라는 이유만으로’ Hub를 지정하는 방식은 재검토가 필요하다.
응급의학과 전문의의 한 마디
응급실에서 일하다 보면, 중증 환자를 받아줄 병원을 찾느라 전화를 수십 통 돌리는 상황이 여전히 일상이다. 환자가 이송 도중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서도, 이것이 시스템의 문제임을 절감한다. Hub & Spoke 네트워크가 정착된다면, 적어도 ‘어디로 보낼지’의 불확실성은 줄어들 수 있다.
다만 나는 이번 정책에서 한 가지를 특히 주목한다. 수가 인상과 병원 지정이라는 공급 측 개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필수의료 기피의 본질은 경제적 인센티브만의 문제가 아니다. 중증 환자를 다루는 의료진이 의료 소송과 형사 고발의 위험에 노출되는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면, 수가를 두 배로 올려도 사람은 모이지 않는다. 이번 개편이 진정한 전환점이 되려면, 수가 정상화와 함께 필수의료 종사자에 대한 법적 보호 체계 개선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구조를 바꾸는 일은 하나의 레버를 당기는 것이 아니라, 여러 레버를 동시에 조작하는 일임을 정책 입안자들이 직시하기를 바란다.
References
- 보건복지부·기획재정부·교육부. 지역·필수 의료 공급 체계 간담회 발표자료. 2026년 2월 25일. (세종 충남대병원)
- Hwang K, et al. “Regional Disparities in Emergency Medical Access and Trauma Outcomes in Korea.” Health Policy and Management. 2023;33(2):112–124.
- OECD. Health at a Glance 2025: OECD Indicators. Paris: OECD Publishing; 2025.
- 건강보험심사평가원. 2025년 진료비 통계지표. 2026.
- 정경실. “국립대병원 지역의료 중추 역할 강화 방향.”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 발표문. 2026년 2월 25일.